역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조금은 오래된 이야기이다.
계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리고 사소한 일에서 생기곤 한다. 나는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역사 공부를 진지하게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맞이했다. 고인돌이 어느 시대의 유물이냐는 질문에 나는 "구석기 시대 아니야?"라고 대답했었다. 나의 부족한 역사 지식의 빈약함이 드러난 순간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선사 시대 이후에 어떤 시대가 이어지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를 보며,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는 몰랐다. 사소한 계기로 시작한 역사 공부가 내 생각과 시각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줄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역사를 배우는 이유로 사람들은 흔히 세 가지 정도를 이야기한다.
첫째,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둘째,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셋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 정도일까?
하지만 나는 정답을 내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정답은 생각을 멈추게 하지만 질문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정답을 제시하고 싶지 않다.
계급과 권력
내가 역사 공부를 하면서 특히 흥미를 느낀 부분은 이다. 이 시기는 생산력이 증가하여 발생으로 계급이 분화된 시기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지배하는 구조가 생긴 것이다. 이 구조는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계급은 에서 사라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과 권력 구조는 여전히 존재한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은 욕구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 욕구가 단순히 과거의 계급 구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 과시는 여전히 존재한다.
삼국 시대, 통일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었던 권력 유지와 욕심은 현대 정치, 사회 구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며 사회적 우위를 강조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까지. 한 번 권력을 탐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과 인간 욕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생각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마다 "제발, 제발!"이라며 누군가에게 기원하기도 한다. 이는 아주 오래된 신앙의 흔적()이며 현대 사회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통령이 국가 운영을 무속인과 함께 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들린다.
나는 역사를 배우면서 지속적으로 느끼는 불쾌함이 있었다. 단순히 과거가 부끄럽거나 끔찍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악함이 얼마나 오래되고 뿌리 깊은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까지 이어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왕과 양반, 농민과 노예의 삶은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큰 불쾌함이다.
이처럼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의 중요한 단서이다. 과거를 알지 못하면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 과시, 탐욕, 그리고 반복되는 실수를 이해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종교
나는 종교가 없고 신앙심도 없는 편이다. 종교에 거부감은 없지만 과하게 신앙을 갖는 사람을 보면 거리를 두는 것은 사실이다. 뉴스에서 들리는 종교 관련 이야기는 대부분 좋지 못한 사건과 연결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선이 생겼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란 인간의 삶에 위안과 질서를 주려는 도구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권력과 결합하여 때로는 억압과 갈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통치 를 통해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고, 이는 결국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조선 시대의 성리학은 단순히 철학이나 도덕적 가르침을 넘어 사회 전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분제 사회는 숨 막히는 답답함을 만들어냈고, 신분을 지키기 위한 헛된 노력은 결국 일제강점기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자체도 분노를 일으키지만 고작 신분 따위를 지키기 위해 나라를 운영한 사람들이 더 큰 분노를 만든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를 보면 종교가 여전히 권력과 통제의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일부 사이비 종교 집단은 신도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믿음을 권력 유지와 개인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이용한다. 신천지와 같은 단체를 보면, 신도들은 마치 과거 신분제 사회의 백성처럼 스스로를 제한하며 조직의 권위에 복종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권력 과시와 통제, 그리고 인간의 맹목적 복종을 관찰하고 비판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이 힘을 길러주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력
과거 삼국 시대에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가 패권을 쥐고 주변 세력을 조율했다.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로 이어지는 그때의 이야기이다.
군사력과 경제력, 외교력을 바탕으로 한 패권 국가는 주변 세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변 국가는 생존을 위해 패권국의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현대를 보면 이러한 구조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은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까지 총동원하며 국제 질서에서 "판을 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삼국 시대의 한강 유역 패권처럼 국제 질서를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목소리라도 국가가 강하면 목소리의 영향력은 훨씬 커진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을 통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고 무역 협상에서 다른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패권을 행사했다. 이처럼 국력은 단순한 군사적 힘만이 아니라 경제적 수단을 통해서도 현대 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력은 단순한 힘의 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양한 영향력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조율하고, 때로는 다른 나라의 선택과 삶까지 흔들 수 있는 힘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역사 공부는 특별했다.
학창 시절에 접했던 역사 공부는 단순히 시험을 위한 암기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연도와 사건, 왕의 이름만 외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역사를 들여다보니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아! 슬프게도 암기해야 하는 것도 정말 많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문화유산, 그리고 인물들의 이름까지 빼곡하게 외워야 한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지도나 그림, 도표 등을 직접 만들어가며 정리를 했으니.
그런데 여기서 하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지식을 정리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오랜 시간 직접 자료를 완성하고 시험 삼아 풀어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는 나를 좌절시켰다. 분명 빼곡하게 정리하며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머릿속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정리만 열심히 했을 뿐, 머릿속에 새겨 넣는 괴로운 과정을 건너뛰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다. 자격증을 취득하려 공부한 것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오랜만에 꺼내 본 나만의 역사책은 나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했다. 이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에 도전하려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역사를 다시 한번 느끼고 그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할 수 있는지, 나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