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대하지 않은 세상, 실수에 대한 우리의 태도
우리는 실수에 관대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수에 대한 태도와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며, 故 김새론 님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관대하다
관대하다는 말은 "마음이 너그럽고 크다."라는 뜻을 가진다. 즉 관대하지 않은 세상이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을 의미한다. 실수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이 되고, 작은 잘못이 비난받으며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관대하지 않은 세상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환경 속에 놓여 있다. SNS에서의 작은 말실수 하나가 평판을 좌우하고 과거의 행동이 기록되어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데 세상은 완벽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인들에게 더 가혹한 세상이다. 이제는 별이 된 故 김새론 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글을 작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故 김새론
故 김새론은 과거 음주 운전으로 강남구에서 사고를 일으킨 일이 있다. 해당 사고로 적지 않은 배상금을 치르고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잃은 것보다 쌓아온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것이 훨씬 큰 문제였다.
당시 언론은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김새론이 10대 로펌 전관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등의 기사(조선일보)를 보도하며 그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고 사람들은 더욱더 비난을 퍼부었다. 인간은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대상을 시기하는 못난 종족이기 때문에 "너 잘 걸렸다!"는 식으로 그녀를 몰아세웠다.
어릴 때부터 큰 사랑을 받아온 그녀는 이 같은 현실이 너무나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사고 당시 그녀는 스물셋 정도였을까? 그 나이에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으리라.
한 번 박힌 나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성년자 성범죄자나 병역 기피자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연예인이 있지 않은가? 연예인에게 이미지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법적 처벌을 피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방송에서 볼 수 없었다. 나는 딱 여기까지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선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처벌을 받았으며, 동시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또한 재기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으니까. 더 이상 그녀를 비난하고 괴롭히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사생활을 보도하는 유튜버가 있었고, 언론도 끊임없이 그녀의 삶을 들춰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녀를 끝없이 몰아세웠을까? 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빼앗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사과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유치원에서부터 배우는 기본적인 가치다.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용서하는 것에 이토록 인색할까?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관대함을 배워야 한다.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하기보다는, 그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故 김새론 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