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순간과 이별: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
반려동물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과 이별의 아픔에 대해 공유하며, 사랑과 추억을 나누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반려동물
반려동물은 사람과 동반자로서 살아가는 동물이며, 단순히 함께 사는 동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며 서로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려'라는 단어는 '서로 도와주는', '서로 의지하는' 등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람에게 위안, 동반자, 심리적 안정 등을 제공한다.
대한민국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가구가 약 30%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개와 고양이가 가장 많으며 이 외에도 새, 토끼, 햄스터나 파충류 등과 함께 하기도 한다.
나의 이야기
13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친구네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에게 어떠한 예고도 없이 덜컥 강아지를 받아 왔다. 불청객으로 찾아온 녀석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부모님도 달가워하지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마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님이 알던 분이 여러 강아지를 키운 경험이 있었는데, 우리 멍멍이를 보고는 본인이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한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멍멍이는 다른 집으로 떠나버린 후였다. 막상 멍멍이를 보내고 슬퍼서 눈물을 흘리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때마침 멍멍이를 데려간 아주머니는 멍멍이가 하루 종일 현관 문만 바라보고 있다며 본래 주인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멍멍이는 이미 가족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부리나케 가서 돌려받았다고.
강아지의 품종은 수컷 말티즈이다. 많은 말티즈들이 그렇듯 성격이 정말 지랄이다. 돌려받는 순간에도 왜 나를 이런 곳에 갖다 놓았냐는 듯이 짖었다 한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우리 멍멍이는 13년을 상전으로 살게 된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까지도 강아지가 집에 혼자 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어느 곳을 가도, 그 어떤 일을 해도 항상 어머니 품에서 함께 했다.
나는 그 무엇이 되었든 자연적인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성격은 강아지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 흔한 중성화 수술이나 어떠한 훈련도 시키지 않았으며 물과 사료, 간식 등은 자율배식으로 항상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가뜩이나 지랄맞은 성격과 이러한 규칙으로 인해 우리 멍멍이는 당당하게 서열 1위를 차지했다.
이빨이 날 때는 집안 곳곳을 물어뜯고 다녔고 바닥에 깔아 놓은 이불에는 멍멍이 오줌 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금 자라고부터 산책을 통해 대소변을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집에서는 일을 보지 않게 되었다. 산책부터 시작해 아이의 목욕 등은 모두 어머니가 맡게 되었다. 내가 키운다며 데려왔지만 그리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일상 속에 어머니도 강아지에게 많은 위안을 얻고 심리적인 안정을 받은 듯하다. 강아지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정도로 모든 시간을 함께 했고, 이에 따라 매우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식사 시간도 항상 전쟁이었다. 이 녀석이 사람 먹는 밥을 몇 번 먹어보더니 사료보다 맛있어서 그런지 항상 자기도 달라고 하였다.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큰 녀석은 매우 건강했다. 심장 사상충 주사 등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지인들도 이 녀석을 보면 어떤 말티즈가 몸에 있는 근육이 보일 정도냐며 놀라 했다. 이 대견한 녀석은 방문객을 보면 뭐가 그리 반가운지 뽀뽀하려고 난리를 쳤다. 비록 나는 많이 물렸지만.
20년은 훌쩍 살 것 같았다. 이 녀석의 아픈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외출하려고 옷을 입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쫓아다니며 어디 가냐고 짖었으며, 집에 가면 현관에서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시골에 가거나 집 근처에만 오면 아는 곳이라며 짖어대는 똑똑한 녀석이었다.
산책을 가려고 준비하면 빨리 가자며 무릎 높이까지 뛰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점프를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이 녀석도 나이가 드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 먹고 건강한 녀석이라해도 뒷다리에 힘이 부치는 것 같았다.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이 녀석을 위해 몇 번의 교배 기회를 주었으나 관심이 없던 것인지 교배는 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 녀석도 노령견이 되었다. 꼬리에는 정체 모를 혹이 생겼고, 피부에는 쥐젖 같은 것이 생겼다. 혹의 정체를 알아보며 수술해야 하나 고민도 했었고, 쥐젖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건강하기를 기원하며 쓰다듬어 주었다. 노령견에게 수술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이 존재하기에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녀석은 나이에 비해 건강했고 우렁찬 소리는 변함없었다.
건강했던 녀석의 살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로 기억한다. 사실은 돼지가 아닐까 싶었던 녀석이었는데 눈에 보일 만큼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먹는 것을 거부했다. 입이 아파서 먹지 못하는 것 같아 병원에 가보았더니 이 녀석의 신장 수치가 정상 범위의 열 배를 넘을 정도로 좋지 않음을 확인했다.
병원을 다녀온 이후 멍멍이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다리에 주사를 꽂고 있어 잘 걷지도 못했고 하루 종일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애처롭고 슬펐는지 모른다. 귀도 안 들리기 시작하여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가족들이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듣지도 못하는 녀석을 놀리는 것 같아 짜증이 났었다.
이 녀석을 낳아준 엄마와 아빠는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싶었다. 다시 건강을 찾고 힘차게 뛰어다닐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니, 병원을 다녀오고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다. 예전처럼 오랫동안 산책을 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대소변을 볼 정도의 산책은 이루어졌다.
이러는 와중에도 점점 이별의 시간은 다가왔다. 밥을 먹지 않아 노란색의 구토를 했으며, 밥을 먹어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 결국 토해내더라. 눈은 초롱초롱 했지만 귀는 완전히 멀어버렸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더 이상은 반겨주지 못했다.
새벽마다 녀석이 걸어 다니는 소리를 들으면 자는 와중에도 눈이 떠졌다. 토를 하려고 자리를 찾는다거나 밖에서 대변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어쩌면 외로이 하늘나라로 가버릴 것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녀석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별의 시간이 코앞까지 왔다. 물조차 먹지 못하는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며 곁에서 쓰다듬어 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혀는 새까맣게 괴사해버렸고 물을 먹고 싶어 물그릇을 바라보는 모습은 가족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건강했던 녀석이 더 이상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처음으로 안락사를 이야기하였다.
어떠한 치료로도 망가진 몸을 되돌릴 수는 없었기에 사랑하는 이 녀석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했다. 2024년 11월 11일 새벽, 녀석의 마지막 밤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몇 번은 울었다.
날이 밝고, 어머니는 아이가 물이라도 먹게 해주고 싶다며 병원에 데려갔다. 마음 한켠에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람과는 다르게 병원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치료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주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반 년 전에 이미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란다.
사랑하는 녀석을 보내는 것은 힘들었다. 이 힘든 결정을 어머니께 맡긴 것이 죄송하다. 그리고 힘든 결정을 내리신 어머니에게 존경과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다. 차갑게 식은 녀석은 화장을 거쳐 시골 뒤뜰에 묻혔다.
이 녀석을 다시 볼 수 없음은 너무 슬프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생각나는지 모른다. 그래도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낳아준 엄마, 아빠와 함께 많이 먹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길 기도한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